| 아랫목 정서, 지금 다시 불러야 할 이유 정처칠(호남인뉴스 총괄국장) 호남in뉴스 jjsin1117@naver.com |
| 2026년 02월 03일(화) 1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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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날씨에 온 세상이 하얗게 얼어붙은 겨울날,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꽁꽁 언 손을 아랫목 이불 속으로 밀어 넣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얼어붙은 손끝이 서서히 녹아내리던 그 감각은 단순한 온기가 아니라 하루의 고단함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랫목은 늘 온기가 밖으로 새 나갈세라 두꺼운 솜이불로 단단히 덮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뚜껑을 덮은 사기그릇에 집안의 가장 큰 어른 밥공기가 함께 놓여 있곤 했다. 그 모습은 존중과 배려가 생활로 스며든 상징과도 같았다.
아랫목에는 자연스러운 위계질서가 있었다. 이는 강압적인 질서가 아니라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지키던 생활의 규범이었다. 아랫목은 당연히 어른들의 차지였지만, 먼 길을 다녀온 학생이나 몸이 아픈 자식이 있으면 어른들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내주었다. 따뜻한 자리를 양보하는 그 행동 하나에 가족을 향한 배려와 책임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삶의 태도는 그렇게 전해졌다.
아랫목은 교육의 공간이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밥상머리 교육 못지않게, 아랫목 교육은 삶의 기본을 익히게 했다. 어른들 사이에 앉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말없이 분위기를 읽는 법을 배웠다.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태도, 어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세, 그리고 필요할 때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법까지 모두 아랫목에서 몸으로 익혔다. 아랫목에서는 훈계보다 일상이, 규칙보다 관계가 먼저였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아랫목 문화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집 안에서 특정한 ‘아랫목’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좌식문화는 입식문화로 바뀌었고, 바닥에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는 풍경도 점점 사라졌다. 난방은 집 전체를 고르게 데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사이의 온도는 그만큼 균일해지지 못했다.
아랫목이 사라졌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 하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겨 있던 정서와 관계의 방식, 배려와 질서의 감각이 함께 희미해졌다는 뜻이다. 물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아랫목이 품고 있던 정서만큼은 현대의 삶 속에서도 되살릴 수 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약한 이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 말보다 행동으로 전해지는 존중의 태도는 공간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아랫목은 없지만, 아랫목 정서는 다시 만들 수 있다. 따뜻한 자리를 나누던 마음, 말없이 등을 내어주던 배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던 그 감각을 오늘의 가정과 사회 속에서 다시 살려내야 할 때다. 그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우리만의 온기이기 때문이다.
호남in뉴스 jjsin1117@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