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고스톱의 언어로 해부한 정치의 속사정 이현명 기자 호남in뉴스 jjsin1117@naver.com |
| 2026년 02월 12일(목) 12:36 |
|
일부는 일본어 ‘쇼부’에서 비롯된 은어까지 섞여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대부분이 긍정보다 부정의 뉘앙스를 강하게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래 고스톱은 명절이나 모임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놀이 문화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 판돈이 걸리고, 승부가 과열되며, 갈등과 다툼을 낳는 장면들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온라인과 모바일로까지 확장된 지금은 과몰입이 사회 문제로 거론될 정도다.
현금이 걸린 승부는 관계를 흔들고, 작은 판이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갈등과 충돌, 이해득실이 교차하는 풍경은 정치권의 일상과도 낯설지 않다.
그래서일까. 고스톱과 정치 사이에는 묘한 공통의 문법이 흐른다.
정치는 종종 체스에 비유되지만, 한국 사회에서 더 피부에 와닿는 비유는 고스톱일지도 모른다.
규칙은 단순하지만 판은 복잡하고, 결과는 단번에 정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패의 좋고 나쁨보다 흐름을 읽는 능력이다. 고스톱의 고수는 자신의 손패만 보지 않는다.
상대의 패와 남은 패, 점수의 흐름을 동시에 계산한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정책의 명분만으로는 판이 움직이지 않는다. 여론의 방향, 동맹의 이해관계, 상대의 계산을 읽어야 한다. 카드가 아니라 판을 읽는 사람이 이긴다는 점에서 두 세계는 닮아 있다.
타이밍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고스톱에서 ‘고’를 외칠지, ‘스톱’을 할지는 점수보다 흐름의 문제다. 정치 역시 발언과 결단의 시점이 판을 바꾼다. 너무 빠른 승부수는 역풍을 부르고, 너무 늦은 결단은 기회를 놓친다. 그래서 정치에서의 선택은 늘 시점의 문제로 귀결된다. 언제 밀어붙이고 언제 멈출 것인가, 그 판단이 승패를 가른다.
여기에 연합과 견제의 역학이 더해진다. 고스톱이 세 사람 이상이 되면 묘한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작동한다. 정치 역시 공동의 목표 앞에서는 손을 잡지만 이해가 엇갈리면 곧바로 등을 돌린다.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표현이 정치 담론에서 쉽게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 그 모호함이 두 세계를 겹치게 만든다.
리스크 관리 역시 공통의 요소다. 욕심을 내다 ‘피박’이나 ‘독박’을 쓰면 한 번에 크게 잃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승부수는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책임이 고스란히 돌아온다. 그래서 정치인은 늘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동시에 계산한다. 고스톱의 승부가 결국 계산과 절제의 게임이듯, 정치 역시 위험과 보상의 균형 위에서 움직인다.
무엇보다 두 세계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고스톱은 막판 한 장으로도 판이 뒤집힌다. 정치도 선거와 여론, 사건 하나로 흐름이 급변한다. 그래서 정치의 승패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오늘의 우세가 내일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물론 정치를 단순한 게임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정치의 결과는 공동체의 삶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스톱의 언어가 정치 담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략과 타이밍, 연합과 견제, 위험과 보상의 계산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두 세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놀이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판을 바라보는 우리의 언어가 고스톱의 은유로 가득한 현실은, 그만큼 정치가 승부와 계산의 문법 속에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필요한 것은 승부의 기술보다 판을 바꾸는 상상력일지 모른다. 고스톱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정치를 설명할 수 있는 날, 그때 비로소 정치도 새로운 판을 맞이할 것이다.
호남in뉴스 jjsin1117@naver.com
